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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0 11:26
조선시대의 서예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4,047  
조선시대의 서예
 
 
 
조선시대 초엽의 서예는 고려 말의 경향이 그대로 계승되어 조맹부의 서체, 즉 송설체가 유행하였다. 송설체로 된 증도가(證道歌) ·천자문(千字文) ·적벽부(赤壁賦) 등이 왕부의 명령으로 간행되어 일반에게 전습(傳習)되었다. 1435년(세종 17)에는 승문원(承文院) ·사자관(寫字官)의 자법(字法)이 해정(楷整)하지 못하였다 하여 왕희지체로서 궤범(軌範)을 삼게 하였으므로 이로부터 양체가 안행(雁行)하였으나 주류는 역시 송설체였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중망(衆望)을 한몸에 모은 예원(藝苑)의 중심 인물이었고, 당시의 최고 화가인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발문(跋文)은 30세라는 약년(若年)의 서(書)이나 호매(豪邁) 늠늠하고 품위 또한 높다. 따라서 당시 천하제일이라 하였다.

선조(宣祖) 이전에 서명(書名) 높은 사람으로는 강희안(姜希顔) ·김종직(金宗直) ·정난종(鄭蘭宗) ·소세양(蘇世讓) ·김구(金絿) ·성수침(成守琛) ·이황(李滉) ·양사언(楊士彦) ·성혼(成渾) 등이 있다. 대체로 조선 전기는 조맹부 ·왕희지 이외에도 명나라 문징명 ·축윤명의 서풍도 들어와 혼류(混流)되어 행하여졌다. 성종(成宗) 때의 권발(權撥)은 수윤(秀潤)한 행 ·초서의 대가로 초서는 조선시대를 통하여서도 가장 뛰어났다.

선조(宣祖) 때에 한호(韓濩)가 나온 후로는 조선시대의 서풍이 크게 변모하였다. 즉 한호는 한국 서예사상 매우 이름 높은 사람으로 진체(晉體:왕희지풍의 체)를 연수한 듯하며 적공(積功)하여 해 ·행 ·초서에 능하였으나 누기(陋氣) ·속기(俗氣)가 많았다.

그 후에는 삼대가(三大家)라 불리는 백하(白下) 윤순(尹淳) ·원교(圓喬) 이광사(李匡師)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이 있으며, 미불(米) ·백송(白松) 지창한(池昌翰) 등이 유명하며 이들의 필적은 오늘날에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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