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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0 13:18
[예서] 예 서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6,287  
예서(隸書)
 
 
 
전국시대부터 진(秦)나라에 걸쳐서, 그 때까지의 공식서체였던 전서(篆書)의 자획(字畵)을 간략화하고, 일상적으로 쓰기에 편리한 서체로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예서란 전서에 예속하는 서체라는 뜻이다. 또 노비인 정막(程邈)이 소전(小篆)을 간략화 ·직선화하여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예서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전한(前漢)부터이며, 전한 중기까지의 것을 고례(古隷)라 한다. 예서는 전한 말기(BC 1세기경)에 완성되었고, 이를 팔분예(八分隸) 또는 팔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후한(後漢) 때인 2세기경 팔분은 이미 의례적인 서체가 되고, 대신 초례(草隷)가 생겼으며, 육조(六朝)시대에는 해서(楷書)가 예서를 대신하게 되었다. 예서는 한 점 한 획마다 너울거리는 물결 모양이 있으며, 가장 큰 특색은 가로 획의 끝을 오른쪽으로 빼는 데 있다. 이를 파세(波勢) 또는 파(波)라고 하며, 팔분은 좌우에 균형잡힌 파가 있는 서체를 말한다.

고례의 작품은 전한시대의 목간(木簡)에 많이 전해지며, 후한 후기에 비(碑)의 건립이 유행하여,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묘(孔子廟) 안의 ‘을영비(乙瑛碑)’ ‘예기비(禮器碑)’ 등, 팔분으로 쓴 뛰어난 비가 많이 세워졌으며, 서가(書家)들이 서로 솜씨를 겨룬 결과, 서도(書道)가 융성해졌다. 당(唐)나라의 현종(玄宗)은 예서에 능하였으며, 청대(淸代)에는 한예(漢隸)의 비(碑)에 대한 연구가 성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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